죽이고, 점령하고, 무너뜨리며 살았어.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것들로 만들기 위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언제라도 움켜쥐기 위해. 그런데 이렇게 네 안에서 쉬고 있으면 세상 향해 품었던 독기와 증오를 비워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전투 의식 따윈 벗어 던지고 너 하나만으로 남은 시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게 눈이 멀고 마음이 멀어, 네 바다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순한 물고기가 되어도 좋아. 그러니까 다시는 어둡고 쓸쓸한 자리에 나 혼자 남겨두지 마. 네 눈물에 잠겨 살게 하지도 마. -한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