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달빛 아래 나타난 요정, 널 향한 내 감정은 욕망인가, 사랑인가?
순식간에 역전된 시선의 높낮이가 예은을 숨막히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그의 커다란 몸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그녀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강혁은 순식간에 예은의 허리를 낚아 채 가까이 끌어당겼다.
“나에게 팔려 온 노예 흉내라도 내고 싶은 거냐? 원하지 않았던 결혼이라고 말할 참인가? 널 협박하고 위협해서 몰아붙인 결혼이라고?”
예은은 그의 팔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매우 잘 알고 있군요. 당신 계획에 멍청하게 걸려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마음에도 없는 행복한 신부노릇을 해 주길 기대하진 말아요!”
“침대에서만은 행복한 신부였단 걸 인정하렴.”
예은의 작은 몸을 손쉽게 감싸 안은 뒤 강혁은 전혀 동요 없는 목소리로 그녀를 조롱했다.
“저질, 쓰레기 같은 인간…….”
열 한 살이나 많은 사내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은 예은은 여전히 입가의 비릿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강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내 손으로 당신을 파멸시킬 거야. 기필코.”
그녀의 허리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끌어당긴 뒤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에 의해 파멸 당하더라도 널 절대 놓아주진 않아. 함께 파멸의 길로들어서는 것도 해 볼 만 하겠군.”
“서울로 가는 즉시 난 미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 와 예원을 다시 찾고 당신과 이혼할거야. 그 땐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날 마음대로 농락할 수는 없을 테지.”
“미국에는 다시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텐데? 너의 경영 교육은 내가 직접 맡으마.”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예은을 향해 강혁이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사육사가 되어 보는 것도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야. 임예은, 넌 호랑이 새끼고 난 너를 키울 거다. 그리고 얼마나 날 짓이길 수 있는지 두고 볼 거다. 하지만 기억해 둬.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예원 통상 하나가 아니었단 걸.”
자신을 향한 집착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강혁을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눈빛으로 올려다보던 예은은 다시 한 번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예원 통상도, 나도 영원히 당신 것은 아니야.”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예은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강혁은 입가에서 비웃음을 거두고 싸늘한 목소리로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내게서 벗어나려면 함께 파멸하는 수밖에 없어.”
예은의 증오 어린 눈빛과 강혁의 타는 듯한 욕망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혀든 뒤, 한참이 지나도록 룸 안에서는 어떠한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두 남녀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증오와 욕망만이 소리 없이 커져 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