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덜 익은 풋사랑이 단 하나의 사랑이 되기까지
텅 빈 교실 안에서 어머니의 소설을 읽고 있는 인영을 처음 본 순간, 지한은 그날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유난히 하얀 얼굴과 유리알 같은 갈색 눈동자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 지한. 그가 건네 준 하얀 머리띠로 인영과의 사이가 한 뼘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 지한의 실수로 그녀와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되었고, 그 실수의 대가로 지한은 10년 동안 그녀를 지독하게 그리워하게 되는데…….
▶잠깐 맛보기
“이러지 마세요, 사장님. 뭔가 착각을 하신 모양이네요.”
한 걸음 뒤로 밀려난 지한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인영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했었는데 인영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거나.
인영은 좁은 공터에 지한을 남겨 두고 그곳을 떠나려 몸을 돌렸다. 하지만 지한의 손이 다시 인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에게 잡힌 자리가 불붙은 듯 뜨거웠다.
“나 기억 안 나? 나 모르겠어? 우리 열여덟 살 때…….”
“기억나지 않아요. 열여덟 살이라면 10년 전인데 어떻게 기억이 나겠어요? 우리가 친했었나요?”
인영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했느냐고? 우리가 친했느냐고?
“아니…….”
“그랬군요. 어쩐지…… 친했던 친구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근데 사장님이 아는 이인영이란 사람이 제가 맞긴 맞나요?”
하아. 지한은 낮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잔인하다. 인영의 말들이 너무 잔인하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인영은 여전히 건조한 눈빛으로 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욕을 해도 좋으니 그를 기억한다고 말해 주면 좋았으련만…….
“그래…… 날 기억하지 못해도 좋아. 날 모른 척하고 싶은 거라면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도망가지는 말아 줘.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