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넌 너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너로서의 삶을 살면 돼.”
오빠의 죽음 후 오직 의무감만으로 연주하는 연희. 슬픔을 감춘 채 자신만의 음악을 표현하던 그녀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정원은 그녀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서서히 가까워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두 사람. 이제 연희는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드러내려 하는데…….
소녀는 피아노 의자에 앉으려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발목, 병원에 빨리 가지 않으면 안 될 거야. 우선 그거라도 묶고 있어.”
“난 괜찮아. 손수건이 더러워질 거야.”
정원이 사양하자 그녀는 혀를 차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내 발목을 칭칭 감쌌다.
“요령이 없구나? 너.”
온통 멍투성인 자신의 몸과 소녀의 새하얀 손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자 정원은 창피한 기분이었다.
“이제 됐어.”
“누가, 진짜 위험인물이야? 너? 아니면…….”
소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좀 전에 연주했던 빗방울 전주곡이었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졌다. 정원은 두 눈을 가만히 감았다. 왠지 그의 마음마저 슬퍼지는 음색에 어떤 표현할 말도 떠올리지 못했다.
더 이상은 어떤 게 빗소리이고, 어떤 게 피아노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저 한데 뭉쳐서 그의 마음에 잔파동을 일으켰다.
그렇게 소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