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스무 살의 여대생, 신지윤.
그녀에겐 10년간 짝사랑한 남자, 동갑내기 친구 정민혁이 있다.
용기 내어 민혁에게 고백한 그 날, 지윤의 가슴에 잔인한 상처를 남긴 채 그녀의 짝사랑도 끝이 난다.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대학친구인 준희가 어학연수를 간 동안 그녀의 아파트에서 6개월간 살기로 결정한다.
그 곳에서 그녀의 오빠인 준세와 예기치 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과연 그녀의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한 까칠 하는 스무 세 살의 양준세, 그 못지않게 한 성격하는 신지윤.
그들의 까칠한 이야기 속으로 Go Go~!
-본문 중에서-
“와아!”
준희가 살던 아파트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좋았다. 단지 흠이 있다면 번호를 누르는 전자키가 아니라 열쇠로 문을 열어야 된다는 수고스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뭐, 항상 열쇠만 가지고 다닌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난 305호라고 적힌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준희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게 완벽 그 자체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풀 옵션이구로구나. 잠시 집 안을 둘러보니 TV, 에어컨, 소파,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그 외에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다 갖춰져 있었다. 문단속을 너무 철저히 해놓은 준희 덕에 집 안의 공기는 숨 쉬기가 역할 정도로 탁했고, 난 이내 답답증을 느꼈다. 환기를 시키고자 베란다로 나가 커다란 유리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동안 혁이로 인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아파트 앞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내 추위를 견디지 못해 거실로 다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뉘이고서 눈으로만 집 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 난 다시 몸을 일으켜 먼저 왼쪽 편에 있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아마 이곳이 준희가 쓰던 방인 듯, 준희가 즐겨 사용하던 향수의 진한 향이 묻어났다. 거실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캐리어를 들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품은 화장대에 올려놓고, 옷들은 옷장 속에 하나씩 정리해서 넣었다.
“우와!”
대충 짐 정리를 끝내고 나서 침대 위에 그대로 대(大)자로 뻗었다. 그렇게 누워있으니 세상 그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았다. 늘 잔소리 하던 엄마도 없으니 내 세상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홀로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얼핏 들리는 듯했으나 난 그 편안함이 어느새 귀찮음으로 바뀌어 잘못 들은 거겠지, 하고 또다시 그 편안함을 만끽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이내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오씨! 냉장고 꼬락서니하고는. 먹을 게 뭐 하나도 없냐?”
헉! 분명 허스키 보이스의 웬 남자 목소리가 선명하게 두 귀로 전달되었다. 곧 이쪽으로 오는지 발자국 소리가 더욱더 크게 들렸다. 난 상체를 일으켰지만 그 발자국 소리에 이내 몸이 굳어버린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서서히 더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에 내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도… 도… 도둑이야?!”
발자국 소리에 방 문 근처에서 들릴 때 난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냅다 질렀다. 난 잔뜩 겁에 질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연신 소리만 빽빽 질러댔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읍…살…려…읍….”
이내 커다란 손이 내 입을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야! 조용히 못해? 나 도둑 아니거든. 손 뗄 테니깐 소리 지르지 마. 난 오히려 지금 네가 도둑 같으니깐.”
이내 내 입을 틀어막고 있던 커다란 손이 치워졌고 난 거친 숨을 토해내며 헐떡였다.
“하아… 다… 하아… 당신 누구야?”
“그러는 넌 누군데?”
“난, 난… 그러니깐…….”
내 앞에 서서 날 몹시 못마땅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물음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네놈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단 네 신분부터 밝히는 게 순서 아닌가?
내 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런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낯이 익은 걸까?
“반했냐?”
“뭐, 뭐라고?”
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입을 쩌억 벌리고서 그놈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