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7년째 사귀던 남자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악몽 같던 날, 호랑은 이상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고양이 귀를 닮아 쫑긋거리는 귀는 뭐야? 게다가 저 북슬북슬한 꼬리는 또 뭐고?
그런데 이 남자, 더 이상한 소리를 해서 호랑을 경악하게 만드는데…….
“너, 내 아이를 낳아라.”
삵 가문의 정통 후계자, 강현교와 맹한 아가씨 호랑이의 유쾌, 발랄한 이야기!
[본문 중에서]
수컷으로서의 본능대로 할 수 있다면 그놈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다. 호랑은 전적으로 내 소유이고 내 암컷이고 내 반려이다. 그런 그녀를 먼저 차지했던 놈은 당연히 내게는 적(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내 본능적인 분노가 인간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준석은 이미 호랑의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만나기 이전의 과거에 대해서까지 내가 간섭하고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크릉.
나도 모르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짐승 소리를 냈나 보다. 얌전히 고기를 새우젓에 찍어서 입에 넣던 호랑이 ‘히익!’하며 비명처럼 작게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탁미와 그녀의 어머니를 조심스레 보고는 내게 다시 속삭였다.
“왜, 왜 그래요? 왜 갑자기 이는 드러내고……. 귀랑 꼬리도 바짝 일어서고. 왜 그러는데요? 고기가 맛이 없어요? ……혹시 생고기만 먹는 거예요?”
“뭐?”
“그러니까 익히지 않은 날것만 드시는지…….”
호랑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게 묻다가, 내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서서히 볼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우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죠. 뭐, 그렇게 쳐다볼 것까지야…….”
“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애완 삵으로 생각하라면서요.”
“…….”
빠직. 정말, 이마 위에서 핏대 돋는 소리가 난 것만 같았다. 나는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작게 호랑에게만 들릴 정도로 입을 열었다.
“그럼, ‘애완 삵’을 좀 예뻐해 주시든지요, 주인님.”
“…….”
“쓰다듬어 주고, 좀 물고 빨고, 그래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뭐, 뭐라고요?”
…
나는 강현교의 귀를 보았다. 보들보들해 보이는 털이 귀를 감싸고 있었다. 뭉툭한 귀의 끝부분이 쫑긋거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운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런 건 비현실적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났던 강현교가 어느 순간 꿈처럼 사라질 것도 같았다. 함께 떠들고 웃고 장난도 치고 고기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그러면서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실감이 날까?”
“예?”
“내가 네 앞에 있는 현실이라고, 어떻게 해야 믿겠냐고.”
강현교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들었다. 키가 큰 강현교에게 우산을 씌워 주려면 팔을 높이 들어야 했다. 강현교가 싱긋 웃더니 허리를 숙였다.
“……!”
그리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 위에 가볍게 스쳤다가 떨어졌다. 우산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강현교의 입술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내게 다가왔다가 멀어진 입술이 다시 다가왔다.
“가, 강현교 씨!”
다시 한 번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우산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우산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동시에 머리 위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차가운 비를 맞는데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맞닿아 있는 입술이 너무나 뜨거웠다. 내 뒤통수를 꽉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이 너무 뜨거웠다.
아득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맞닿아 있던 강현교의 입술이 다시 멀어졌다. 뜨겁게 닿아왔던 온기가 사라지자 뒤늦게 한기가 느껴졌다. 강현교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내 어깨 위에 걸쳐 주더니 땅바닥에 나뒹굴던 우산을 다시 들어 내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내 눈을 응시하며 속삭이듯 물었다.
“이래도 내가 비현실적이야?”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어깨에 걸쳐진 그의 겉옷 끄트머리를 꽉 손으로 쥐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