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사춘기 시절의 풋사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망각은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나라고 나, 이혜윤!’ 내 이름이 그의 귀에 꽂히면, 내 얼굴이 그의 눈에 박히면, 그의 눈에 어린 한여름의 열기는 이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어린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서린 한여름의 열기는, 사막의 열기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는 좀 전보다 더 힘을 주어 내 두 팔을 잡고, 배와 다리로 하체를 꼼짝 못 하게 짓눌렀다. 덕분에 말 그대로 고개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내 눈빛도 통하지 않게 되자, 다시 소리 내어 말했다. “정한서! 나야, 이혜윤! 제발 정신 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