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미리는 27살,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LA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는 충동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LA에는 엄마의 오랜 친구이자 미리의 대모인 캐티가 살고 있었다.
미리는 캐티의 집에 머물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때 만나게 된 숙적, 릭 그랜트.
그는 캐티의 조카이자 아들 같은 존재로, 캐티를 빌미로 미리에게 잔소리를 쏟아붓는 성가신 남자였다.
미리는 릭만큼 성가시고 화가 치미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그와 상대하는 동안은 주위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열이 뻗치는데…….
어느 날 미리는 예상하지 못한 충동을 느끼고 만다.
“나로서는 최대한 공손한 거예요. 아니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릭, 당신이 와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네요.’하고 얼싸안을까요?”
“해 봐. 할 수 있으면.”
릭의 눈이 호전적으로 빛났다. 그는 미리가 결코 하지 못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리는 그의 도발에 넘어가선 안 되었다. 하지만 저 남자의 저 눈빛은 정말 최고로 얄미웠다. ‘미안, 난 못 해.’ 하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미리는 입술에 웃음을 우겨넣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로 자꾸만 흘러내리는 시선을 추어올렸다. 그녀는 그의 눈을 노려본 채 두 팔을 벌렸다. 그녀의 눈이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어디 견딜 수 있으면 견뎌 봐.’
“릭, 당신이 와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네요.”
미리가 국어책 읽듯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정말 그에게 가까워졌다. 곧 그녀의 팔이 그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팔이 그의 목덜미에 닿을 것이다. 그럼 그는 가식 그만 떨라며 경멸 어린 표정을 지을 것이다. 미리는 즐거이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내려도, 그의 목덜미에 미리의 손가락이 감겨도 그는 꿋꿋했다. 그의 시원한 코롱 향이 폐부 깊숙이 스몄다. 그의 체온은 어린아이의 것처럼 뜨거워 손바닥이 녹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미리는 동작도 호흡도 잠시 멈추었다. 그의 맑은 갈색 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쑥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역시 미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말간 눈이 점점 짙어졌다. 곧 그 담백한 색에 짙고 묵직한 무언가가 자리잡았다. 미리는 그 순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그의 입술을 보았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그의 입술을.
살짝 다물린 두 입술 사이에는 은밀한 비밀이 담겨 있었다. 그 입술이 가볍게 열렸다. 마치 키스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미리는 그가 끌어당긴 것처럼, 중력에 이끌린 달처럼 그에게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