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숨바꼭질하자고 도망쳐 놓고, 막상 찾아 주니 떨고 있는 거면 그거대로 별론데.”
도훤이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어르듯 우아하게 말을 이었다.
언니를 대신해 행했던 대리 결혼.
그는 우아하지만 잔악무도한 남자였다.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됐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
아이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저도 아이도 죽은 목숨일 게 빤해, 그를 완벽히 속여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제가 도망친 지 열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제 앞에 나타났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아이의 존재를, 그게 아니라면 아이가 그의 아이라는 걸 감추는 것.
“그래서, 애 아빠가 누구지?”
“적어도 도훤 씨 애는 아니에요. 알잖아요?”
그러자 그는 도리어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싸늘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동시에 갈증을 느끼는, 식욕에 부푼 지독한 소유욕으로 광기가 어린 눈이 그녀를 옥죄기 시작한다.
그 시선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챈 그녀는 덜컥 두려움이 차올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가 달달 떨린다.
그녀는 감히 도망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정말 너를 내 아내처럼 생각하고 옆에다 두고 챙겨야지. 봐서 밥도 먹이고, 몸도 씻기고, 성욕도 채워 주고, 어디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다른 남자한테 안기지 못하도록. 목줄이라도 달아 놓으려고.”
이미 그에게 이유원이 아니라, 이서아라는 것을 들킨 순간부터.
그가 그녀는 달아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한 순간부터.
“걱정 마. 아이한테 지금 너의 안에 각인을 새기는 게 나라고 몇 번이고 알려 줄 테니까.”
나른한 바람처럼 풍기는 그의 말은, 제가 만족할 때까지 서아를 제 밑에 붙들어 놓겠다는 지독한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