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벌써 십수 년도 더된 옛날 이야기지만, 무협소설이 열풍처럼 전국을 휩쓸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쉴새없이 걸작들을 뽑아내던 그 시절.
당시 무협에는 재미있는 분류 명칭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정통무협과 기정무협이라는 어휘였다.
정통무협이란 무(武)와 협(俠)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무협을 말함이요, 기정무협이란 애정이나 괴기 등의 다소 이단적인 내용을 다룬 무협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분류는 다분히 광고를 위한 조어(造語)의 색채가 짙은 게 사실이었다.
즉, 실질적으로는 두 부류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저 어느 쪽으로 방향이 치우쳤느냐의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또다른 무협의 부흥기가 다가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두 개의 분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은 십수 년 전의 그것과는 자뭇 양상이 다르다.
서로 다른 두 부류에 분명한 선이 그어진 것이다.
기성작가의 재판을 중심으로 한 무협과, 새로운 신진 작가군의 창작품들.
이렇듯 새롭게 생겨난 두 부류는 사뭇 상이한 양상을 보이며 각자의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글의 전개 방식이나, 모티브의 설정, 무술의 묘사 등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힘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부류는 선명한 색깔의 차이를 가지고 나타난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옳거나, 흥미롭다는 식의 표현은 내리기 어렵다.
각 분야별로 특유의 색채와 재미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사흔 생사기〉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본 작품.
엄밀히 말해서 본 작품은 세 사람이 공동 집필한 형태이다.
번뜩이는 재치의 신인 작가 도지산.
빠르고 풍성한 내용 전개의 중견 작가 상관월.
한국 무협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 고월.
아마도 눈썰미가 날카로운 독자라면 위 세 사람의 특징이 곳곳에 녹아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신인 작가 도지산의 이름이 표지에서 빠지고 말았다. 작가의 지명도가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무협 소설계의 고질적 병폐 때문이다.
물론 작가 본인에게 양해는 구했지만, 자신의 흔적을 증명할 수 없는 무협 소설계의 현실이 가슴 아프기만 하다.
이야기의 방향이 다소 빗나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