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나를 밀어내지 마세요.
어릴 적 세자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궁 밖으로 나와 자란 정과 호. 자유롭게 세상을 유영하길 원하는 정은 어느 날 비밀을 간직한 곱디고운 한 선비를 만난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으나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되는 두 사람. 한편, 정과 반대로 점잖은 동생 호에게 찾아온 연정. 부끄러움에 도망치던 채연이 놓고 간 운혜는 그녀를 다시금 만나게 해 준다. 하지만 이들의 앞날에 부는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고 있는데…….
▶잠깐 맛보기
“그, 그렇지요. 그보다 놓아주시지요. 이제 괜찮습니다.”
예련이 그리 말하며 제대로 일어나 서자 정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왼팔을 풀었다. 정의 소맷자락이 스윽 그녀의 곁을 지나자 좋은 향내가 났다. 그 향내 때문인지 안 그래도 쿵쾅대는 예련의 가슴이 더욱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예련은 그런 자신을 애써 다스리며 차분한 눈망울로 정을 마주 보았다.
“슬슬 날이 저물어 가니 소생은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오늘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내 약조한 걸 지킨 것뿐인 것을요. 그보다 댁이 어디시오? 내가 바래다 드리리다.”
정의 말에 예련은 살포시 고개를 내젓고는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예련은 살며시 고개를 숙여 정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돌렸다. 예련이 한 발짝 사뿐히 내딛었을 때 그녀의 뒤에서 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 도령.”
정의 부름에 예련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예?”
돌아본 정의 얼굴은 포근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다시 기다리고 있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