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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1권

    2019.01.11 약 17.3만자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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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어째서일까, 제가 그 계집아이를 향해 웃는다.
채 열 살도 넘지 않아 뵈는 계집의 맑은 웃음소리에 절로 시선이 가고,
그 아이의 환히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원수 놈의 핏줄인데.
그의 아버지를 자진하게 만들고
어머니마저 껍데기만 이승에 남게 만든 원수 놈의 핏줄.
한데, 그 계집아이가 자라서 이제 혼인을 한다고?
자신은 대를 이은 참담함에 젖어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는데?!
묻어 두었던 복수에의 욕구가 맹렬하게 그를 덮쳤다.
 
 
<본문 중에서>
 
정자에 어른거리는 사람이 있어 살며시 중문을 열고 들어섰다. 옆모습을 보이며 글을 쓰고 있는 아이였다. 계집아이. 차림으로 보아 이희간의 여식인 듯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원수 놈의 핏줄에, 극은 숨을 죽였다.
계집아이는 무슨 글을 쓰는지 자꾸 종이를 새로 갈고 있었다. 글 실력이 없으면 쓰지를 말지, 물자 아까운 줄을 모른다. 그 핏줄이 그러면 그렇지. 극의 입술이 다시금 비틀렸다.
“잘 쓰신 것 같은데요?”
옆에 있던 조금 더 큰 계집종이 종이를 들고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유, 거꾸로 들었잖아! 거꾸로 보아서 잘 쓴 글이 어찌 잘 쓴 글이니?”
지청구를 주지만,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에구머니, 죄송하구만요. 아씨.”
“무슨. 연습이 부족한 내 탓이지.”
그러고는 다시 씩씩하게 붓을 든다. 눈에 힘을 주고, 입도 굳게 다물어 숨을 참는 양이 표정만 제대로였다. 오뚝한 콧방울을 실룩대지 않으려고 끝까지 힘을 주고 있는 양은 우스웠지만.
“아, 이것도 아니야!”
“곧잘 쓰시어 도련님께서도 부러워하실 정도인데, 요 며칠 왜 자꾸 마음에 안 든다 하셔요?”
“이것 봐!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한석봉체가 아니잖아! 우리 스승님이신 공주 자가께서 보시면 회초리를 때리고도 남을 글씨라고!”
지금 이 나라 조선에서 공주 자가시라 불릴 분은 극의 사촌 누님 되시는 정명 공주뿐이시다. 여인임에도 한석봉체를 잘 쓰시어, 서궁에 유폐되어 계실 적에 글로써 왕대비마마를 위로하여 드리곤 하였으니. 한데, 공주 자가께서 제자를 두셨을 리 만무한데? 하물며 역적과 연관된 아이를-
“뵌 적도 없으시면서-”
그러면 그렇지.
“꼭 뵈어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뵙든 아니든, 혹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보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지.”
채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가 하는 말이 꽤 어른스러웠다. 재밌는 말을 하는 아이로구나 싶은 순간- 극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신의 입가가 웃는 듯 옆으로 당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웃은 건가? 내가? 저, 원수 놈의 핏줄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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