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 키워드 : 서양풍, 판타지물, 백합/GL, 첫사랑, 계약연애/결혼, 선결혼후연애, 운명적사랑, 평범녀, 능력녀, 직진녀, 다정녀, 능글녀, 유혹녀, 무심녀, 상처녀, 순정녀, 도도녀, 걸크러시, 털털녀, 왕족/귀족, 남장여자, 달달물, 여주중심, 회귀/타입슬립, 초월적존재, 애잔물
“그대의 다음 삶은 평안하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황족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며
수많은 회귀를 반복해 온 에일린.
그에 지쳐 이번 생에는 머나먼 북부로 떠난다.
회귀 전 유일하게 자신의 평안을 빌어준 대공 칼리시스에게로.
그렇게 솔깃한 조건을 제시해 그와 계약 결혼을 하지만,
왜인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도 갑옷으로 무장한 대공 때문에
그 정체가 오리무중이기만 한데…….
“이런, 첫날부터 소박맞은 남편이 되었군.”
“누구세요……?”
그런데 첫날밤에 찾아온 사람이 여자였다!
그러니까 대공이 여자라고? 칼리시스 에스페리온이……?
*
“여자인 신랑은 싫은가? 그래도 무를 수 없어.”
그렇게 말한 대공이 내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며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은 여유롭기보단 마치 주인의 쓰다듬을 기다리는 개처럼 안달 내는 표정에 가까웠다.
“왜, 왜…… 여자였어요? 그걸 대체 왜 숨긴 거예요?”
“여자는 작위를 이을 수 없으니까. 작위를 이을 후계자는 나뿐이었고.”
대공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대공의 얼굴만 쳐다보며 한참을 얼이 빠져 있던 나는 곧 정신을 추슬렀다.
그래. 무를 수는 없다. 이미 계약은 끝냈으니까. 아니, 암만 그래도 그렇지. 대공 저의 모든 사람이 날 속였단 말인가. 충격받을 거란 렉터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런 건 수백 년을 산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대공이 여자라는 데에 충격을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대공이 여자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80대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할 지경이다. 긴장감이 확 풀렸다.
“여자끼리면 어차피 초야도 못 치를 테니까…… 오늘 밤은 편하게 자겠네요.”
“뭐? 초야는 치를 수 있지.”
“네? 어떻게요?”
“그건…… 지금부터 알려 주도록 하지.”
키득거리는 칼리시스의 얼굴에 어쩐지 불안해졌다. 밤이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