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유신은 10년째 계백과 이별하는 중이다.
사고 이후 편리하게도 계백은 유신에 대한 기억만 싹 지웠다.
사고는 유신에게도 괴로운 기억이었으므로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겼다.
유신 또한 사진작가였던 자신의 꿈을 접고 경찰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의 자전거 뒤에서 맞이하던 벚꽃 흩날리던 봄,
한 우산 속에서 소나기를 피하던 여름,
낙엽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가을,
그리고 겨울.
유신도 그를 다 잊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왜 뒤늦게 돌아와 제 앞에서 알짱대는 걸까?
***
“앞으로는 매일 같이 출근하는 걸로 하지.”
“아니, 아무리 거리가 짧다고는 해도 바쁘신 분께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왜? 싫어?”
당연히 싫지. 겨우 힘들게 그를 잊고 아무렇지도 않아진 일상이었다.
그놈의 고려청자 때문에, 다시 얽히기는 했어도 유신은 가능한 한 접촉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싫어도 할 수 없지. 이것도 다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
짓궂은 미소를 지은 계백이 차 문을 열고는 어서 타라는 듯이 턱짓했다. 망설이듯 다가오는 유신의 발걸음에 초조한 마음마저 들던 계백이 유신이 차에 앉아 안전띠에 손을 뻗는 걸 확인하자마자 가두듯 차 문을 닫았다.
그러고도 계백은 잠시 제자리에서 유신을 바라보았다. 제 차에 앉은 그녀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