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원해 봐.”
애원,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당신한테 또 속아서 받아 줄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니까.”
각오를 다짐한 소이는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로 입술을 다시 한번 떼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한 번만 도와줘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도와줘라. 사람 참 안 변해. 그렇지?”
소이는 하준의 말에 다시금 입술을 꽉 물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한다고 말하려고 하는 건가.”
“그래요. 다 할게요.”
“내가 또 그 생떼를 들어 줄 거로 생각하는 것 같네.”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그래 주길 바라고 왔어요.”
고개를 푹 숙인 소이의 앞에 한발 다가선 하준이 입을 열었다.
“그 생떼 받아 주지.”
“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는 단어가 원래 이렇게 위협적이었던 걸까.
*
*
“내 비서로 일해.”
소이는 커다란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황당한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비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야.”
“…….”
“당신만큼 날 잘 알고 일해 줄 사람을 구할 순 없을 것 같거든.”
저만큼 그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꼭 진심으로 들렸다.
전남편의 비서가 되라는 이 터무니없는 제안이 말이다.
마음이 동요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