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사교 시즌을 피해 남장을 하고 풋맨으로 취직한 저택에서 마주친 첫사랑.
그의 가까이에서 일하며 깊게 묻어둔 마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정체도 숨기고 마음도 숨기며 곁에서 그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레일라?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들켜버린 정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제멋대로인 그의 행동에 결국,
“제가 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의 품에 뛰어들어버렸다.
***
차오르는 열기와 그에 대비되는 차가운 빗줄기가 레일라의 머릿속을 마비시켰다. 좋아하는 사람의 입맞춤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어차피 자신은 떠나갈 사람이었다. 마지막이 될 테니까. 그는 곧 결혼을 할 테니까. 스치는 생각과 동시에 번뜩 정신을 차린 레일라가 양손으로 힘껏 그를 밀어냈다. 그 바람에 자신을 받아들이는 행동에 방심하고 있던 헤리온이 그대로 뒤로 밀려갔다.
레일라는 빗물에 흐릿해진 눈을 깜박이며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이미 잔뜩 젖어버렸지만 그래도 좀 나았다. 레일라는 축 늘어져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정리했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그는 이제 곧 결혼을 할 사람이었다. 그녀가 저택을 떠나려고 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 아니었던가.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지? 레일라는 베아트리체가 쳐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웠다.
‘남의 사내와 이렇게까지 질척이는 키스를….’
부끄러움에 귀 끝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녀를 바라보던 헤리온의 한마디에 멀리 날아가 버렸다.
“…레일라?”
언제나 단단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불린 제 이름에 레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