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내 복숭아, 몇 개를 훔쳤느냐?”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 악질 과수원 주인의 복숭아를 훔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한 개입니다. 딱… 한 개.”
“미련하긴. 열 개를 훔쳤어야지. 벌을 받는 건 어차피 똑같은데.”
복숭아 한 개를 훔치고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여자.
그녀에게 다가온 꿈결같은 시간.
“나는 노비로 끌려왔어. 내게 왜 이런 고아한 의관을 주는 거야?”
“주인어른 손에 닿는 것은 전부 비단으로 꾸립니다. 귀하신 옥수에 때가 타면 안 되니까요.”
달아났다가 잡혀왔더니.
륜(棆).
몸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 사내의 것이라는 증표.
“벗어. 그 저고리, 벗어라.”
륜은 혜강이 직접 제 손으로 그 저고리를 거두는 것이 보고 싶었다.
그의 명령에 얼마나 순종하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하지 마, 아주 성가시다.”
“예, 주인어른.”
“그리고 그 손 치워. 네 멋대로 가린 그것도 이제 네 것이 아니다.”
하는 것마다 불벼락.
하는 수 없다.
“잘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주인어른!”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매달리는 수밖에.
그랬더니 재미가 들렸나.
“더 매달려 봐. 이 정도로는 어림 없어.”
무슨 사내가 이래? 아니, 무슨 주인 어른이 이래?
“훔친 복숭아 값은 꼭 갚겠습니다.”
“갚지 마. 가만히 있다가 내가 훔치면 당해 봐야지. 그 기분이 어떤지.”
사실 주인어른은,
“그 복숭아 말인데, 부탁했으면 그냥 줬을 거다.”
복사꽃 향기에 홀려 서로를 뜨겁게 불살랐던 그때.
도요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