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혼자만 재미 보고 쏠랑 빠져나가시겠다?”
남자의 야한 입술이 일그러졌다.
“재……미라뇨?”
여자는 재미라는 단어가 이렇게 민망하고 퇴폐스러울 일인가 싶다.
“우리 제니는 미혼모가 됐는데, 저 자식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찍어요. 그쪽한테 양육비 청구할 테니.”
제니 오빠 준탁과 경수 누나 정원은 얼떨결에 ‘개’사돈이 됐다.
사고는 경수가 쳤는데, 정원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까다롭고 예민한 생물 같은 그 남자, 민준탁이 신경 쓰인다.
“아팠겠네.”
아팠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넌 분명 아팠을 거야, 단정 짓던 준탁의 말을 들었을 때, 정원은 차라리 이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아픔을 낱낱이 발각당하고 싶다는 묘한 충동을 느꼈다.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이 남자에게만은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가슴을 웅크린다.
사고는 제니가 쳤는데, 대미지는 준탁이 입었다.
그 여자, 정원을 만나고 준탁은 종종 깨고 싶지 않은 꿈같은 현실을 만난다.
“장마가 끝나는 게 아쉬워요.”
안개처럼 속삭이는 여자를 보면서 새드 엔딩도 해피 엔딩도 아닌, 결말 없는 영화 속에 박제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준탁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너를 절대,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