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 키워드 : 서양풍, 동양풍, 소유욕/독점욕/질투, 집착남, 후회남, 냉정남, 오만남, 카리스마남, 철벽녀, 도도녀, 무심녀, 다정녀, 외유내강, 차원이동, 왕족/귀족
정혼자와의 혼인을 앞둔 어느 날,
조선의 공주 율은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그곳은 푸른 눈의 사람들로 가득한 이상한 세상.
그렇게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세계에서,
율은 노예로서 브라운 공작가로 팔려 간다.
“브라운 공작저에 온 걸 환영해, 레이디 유리.”
천사처럼 아름다운 공작, 베일 브라운.
그는 다행히 상냥했으며,
그녀가 타국의 공주라는 것을 믿고
조선으로 돌아갈 방도를 알아봐 주기로 한다.
해서 그를 믿고 의지했는데…….
"돌려보내 줄 순 없어. 넌 내가 사 온 노예니까.”
모든 게 거짓이었다.
심지어는 본색을 드러내고 집착하기까지.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에요.”
“왜? 정혼자가 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해 봐. 사람 도는 꼴 보고 싶으면.”
“……노예는 정혼자가 있으면 안 되나요?”
“다른 노예들은 몰라도, 넌 안 돼.”
율은 그런 베일을 보며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난 돌아갈 거야. 조선으로.”
▶잠깐 맛보기
“다가오지 마!”
다급한 순간, 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반말이 흘러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부려 왔던 이들이나 가질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러나 베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과거 어떤 신분이었든 중요한 것은 이제 그녀는 자신의 소유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노동을 시켜요. 흙 밭에서 일을 하라 하면 그렇게 할 것이고 당신의 종들처럼 쓸고 닦으라 해도 그렇게 할게요.”
“그래서 어느 세월에 200두카리온을 다 갚겠어?”
“10년이 걸려도 좋아요. 당신에게 이딴 파렴치한 짓만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왜?”
시리게까지 느껴지는 벽안. 불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색상. 그러나 율은 마주하는 그의 눈이 푸른 불꽃처럼 보인다 생각했다. 분노에 활활 타오르는 눈빛은 진득한 광기마저 달라붙은 듯 보였다.
그 눈을 마주한 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지난주, 집을 비우기 전 그가 격분했던 이유도 이것이었기 때문에.
“정혼자가 있으니까? 한번 그렇게 이야기해 봐. 사람 도는 꼴 보고 싶으면.”
베일이 잇새로 내뱉은 경고는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노예는. 노예는 정혼자가 있으면 안 되나요?”
기어이 말대답을 하고야 마는 그녀에게 베일은 비릿하게 웃었다.
“글쎄. 있어도 상관이야 없겠지. 단, 주인이 굳이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야. 고려할 사항은 더더욱 아니고.”
베일의 손이 아프게 ‘유리’의 양 뺨을 잡아 눌렀다. 자연스레 유리의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른 노예들은 몰라도, 넌 안 돼.”
“왜……. 아, 안. 하지 마!”
“내가 원하면 넌 언제든 모든 걸 내어 줘야 하는 노예야. 도대체 넌 언제쯤 그걸 학습할까.”
더 이상 나눠야 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베일의 혀가 들어왔다. 입 안 구석구석을 난잡하게 헤집는 남자를 느끼며, 율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