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어느 날 하굣길, 낯선 세계로 떨어진 여고생 시온.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세계에서 '재투성이 소녀'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기사 오르세이드가 시온을 구하러 오고,
그녀가 처한 상황은 자신 때문이라며 무조건적인 헌신과 속죄를 약속한다.
하지만, 한순간에 살아가던 삶을 잃은 시온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은 지 오래.
오르세이드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는데…….
시온의 마음은, 다시 녹아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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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난 최근 2년 동안 널 만난 기억이 꿈인 줄 알았어.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병원에 누워 있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설명을 들었지. 네가 끌려가고 그 마을에서 혹사당하며 살게 된 줄은 모른 채…….”
입술을 깨무는 오르세이드. 그가 ‘혹사당하며’라고 말했을 때 ‘앗’ 하는 표정을 지은 하르웰이 고개를 들고, 내 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더니 다시 시선을 떨궜다.
……혹시 내 처지를 몰랐단 말인가.
오르세이드는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내가 속죄하는 걸 허락해줘. 2년 동안 널 힘들게 했어. 그걸 속죄할 방법이 있을 리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온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거야. 가까이 있으면 마석은 필요 없어, 이 저택에서 지내줘.”
오르세이드는 정말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은 얘기 속에 정작 중요한 내용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나를 일본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가.
“나, 일본으로는 못 돌아가는구나.”
중얼거리듯이 말하자 두 사람은 침묵했다. 하르웰은 고개를 돌린 채, 오르세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정적에 잠긴 방 안에서 난로의 땔감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가 났다.
흔들리는 불꽃. ……내 마음의 얼음 속에서도.
“난 이쪽 세계에 있고,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도 살 수 있겠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하고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시나무가 성장해서 뾰족한 덩굴로 휘감듯이, 내 말은 ‘적’을 천천히 조였다.
오르세이드는 괴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간 내 마음마저 옥죄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오르세이드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에게 받은 앞으로의 내 ‘생’은 네게 바치겠어. 속죄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