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아홉 번째 시도.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에 취해 종탑 위로 올라갔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탑 꼭대기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른 후, 떨어지기 직전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남은 건 딱 한 발자국뿐이었다.
이걸로 이 세계와는 안녕인 거다. 이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인 것을 알기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이 세계에 남은 아주 작은 궁금증이 있다면, 넌 나를 위해 울어 줄까. 아니면 내 죽음에 활짝 웃을까. 딱 그 정도의 의문이었다. 더도 말고 딱 그 정도.
곧이어 내 몸은 허공에 맡겨졌고 추락하기 시작…….
“켁.”
“지금 뭐 하는 거지?”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고, 그 충격에 이상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뎅- 가볍게 허공으로 들린 나는 탑 안쪽으로 던져졌다. 이마가 정통으로 종과 부딪쳤고 그에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마를 부여잡아야 했다.
“으윽. 야! 미쳤어?”
내 말에 그는 잔뜩 인상을 쓰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미친 건 너야. 적당히 좀 해.”
“…….”
“뭐가 문제야.”
달빛을 등지고 선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검은 머리카락은 어둠 속에서 더욱 짙어져 보였고, 그의 눈은 마치 이곳이 내 세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붉게 빛났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
그는 소리쳤고 나는 평소처럼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래, 좋아. 어디 한번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고.”
잔뜩 분노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그날로부터 공작가에 구금돼 버렸다.
젠장. 난, 난……. 집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