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강추!]
어디 있어, 당신? 천 년 동안 함께 하자더니….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야. 나 안 보고 싶어?
난, 당신이 그리워 죽을 것만 같아.
당신,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는 거지?
제발… 돌아와.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이 작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만 싶은데,
그녀가 사라졌다.
그가 보고 싶다고 엉엉 울던 여자가… 사라졌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였다.
그것이 머리가 터져나갈 듯 복잡한 합병 건이든,
아니면 그의 오감을 잡고 흔들어줄 여자든.
지금 그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똑같은 화장, 똑같은 스타일의 옷차림, 똑같은 장신구.
부잣집 공주님으로 태어나 부자 남편을 만나는 인생 최대의 목표까지
모두 똑같은 여자들 틈에서 혁우는 비틀린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 먹는다더니 만두는 왜 먹어요? 그거 내가 먹을 건데?”
하지만 혁우는 오히려 한 입 불룩하게 만두를 집어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잔뜩 약이 오른 해주가 방방거렸다.
“뱉어요! 뱉어요, 얼른!”
“이거 내가 샀어, 왜 이래?”
“이까짓 것 얼마 한다고요!”
“만삼천오십 원.”
침착함을 잃지 않는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혁우는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이 채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던 듯 난데없는 공격에 할 말을
잊은 콩알을 보자 혁우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치사해요! 그깟 돈, 은행이랑 계좌 번호 불러요, 돈 부쳐줄게요! 얼른 불러요!”
“XX은행. 7 다시 213….”
역시 침착함을 잃지 않는 대견함을 보이며 혁우가 대답했다.
“뭐, 뭐요?”
“계좌번호 부르라며? 왜, 못 받아 적었어? 다시 부를까?”
“부…불러봐요!”
역시 쫌생이다!
해주는 입을 삐죽이며 작은 백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그가 부르는
숫자들을 받아 적었다.
“내일 12시까지 입금해. 확인해서 입금 안 됐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대현그룹 사장 강혁우. 이 건방진 여자와 노닥거릴 핑게를 찾아
쫌스럽게도 한 번 만날 때마다 오백 원씩 깎아줄 테니 만나자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까는 정말 당신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구요! 사랑해요!
당신을 잊어버린 것도 미안하고, 가진 것도 없어 너무 염치없지만
나, 당신 사랑하는 것 같아요. 흐흑…!”
서러움과 안도감을 숨기지 않고, 꺼이꺼이 울어 젖히는 해주를 보는
혁우의 얼굴에도 하나 가득 안도감이 내려앉았다.
“사랑하는 것 같다니?”
“어엉~!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다행이다. 모질었던 시간도 다 잊어버린 채, 잃어버린 기억의 긴
터널을 지나 그의 곁으로 온 여자.
그리고 결국 그의 몫으로 원했던 반지까지 그의 손에 끼워준 여자, 최해주.
‘사랑한다. 당신 말처럼 천 년 동안.’
그러려면 천 년은 나중 이야기이고, 지금 당장 해주랑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더욱 흉부를 압박하는 통증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혁우는 그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서러운 일인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해주를 조용히 불렀다.
“해주야, 해주야.”
“흑. 왜요?”
“구급차… 불러.”
“혁우 씨? 혁우 씨!”
그 말을 끝으로 혁우는 의식을 잃었다.
긴장이 풀리며 그대로 하지만 가물거리는 정신을 놓아버리는
순간에도 그는 마냥 행복했다.
정경하의 로맨스 장편 소설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