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한수혁, 너 말이야, 맨날 나 이겨 먹으니 좋아? 난 네가 싫어. 미워.”
“강차희,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게 하나 있어. 바로 연애.”
살면서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 없던 그녀, 강차희.
그런데 그 녀석, 한수혁을 만난 뒤로 ‘만년 2등’이 되어 버렸다.
도저히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차희는
어떻게든 수혁과 함께한 학창 시절을 잊고자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녀석이 직장 상사가 되어 나타나는데!
거기다 자신을 이기고 싶으면 연애를 하자니,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던 한강 커플.
과연, 그 둘은 언로맨틱(Unromantic)에서 로맨틱(Romantic)이 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한수혁! 너 말이야, 맨날 나 이겨 먹으니 좋았어?”
수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나는 네가 미웠어.”
“알고 있어.”
“알아? 어디, 그럼 이것도 아나 보자. 나는 지금도 네가 미워.”
“그것도 알아.”
“아는데…… 너는 자길 미워하는 사람한테 말 걸고 싶어?”
잠시 수혁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그 시선에 차희는 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입으로 나를 미워해 줘, 라고 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제발 나를 미워하고 모르는 척해 주지 않을래, 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니까.
“하지만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그게…… 무슨 뜻이야?”
“차희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차희는 슬슬 내려오는 눈꺼풀을 올렸다. 입가가 자꾸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쓸데없는 이야기거나 전혀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거나.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게 하나 있어.”
그러나 이어지는 그 말에, 차희는 고개를 확 돌렸다. 술기운이 서서히 올라 몽롱했지만 그 말만큼은 제대로 들렸다. 입가가 저절로 풀렸다. 해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게 뭔데에?”
심지어 말끝도 늘였지만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수혁은 그게 귀여워서 피식 웃고 말았다.
“가까이 와 봐.”
수혁이 손짓을 했다. 그거에 또 차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순한 양이 되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수혁이 차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가 나긋하니 귓가를 채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거. 연애.”
“……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차희가 너무 사랑스럽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붉어진 입술을 삼켜 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른 채 수혁은 유혹하는 것처럼 천천히,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나랑 연애하면, 돼.”
“연애……?”
“그래.”
천하의 강차희가 과연 한다고 할까? 술에 취했지만.
“그거 하면…… 내가 한수혁을 이겨……?”
차희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로지 수혁을 이기는 거였다. 눈을 느릿하니 감았다가 뜬 차희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한수혁을 이길 수 있어!’
이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희는 빙긋 웃었다. 수혁의 이성을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게 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할게.”
이길 수 있다는데, 뭐.
“하자, 그거.”
연애인지 뭔지, 하면 되는 거 아냐? 이길 수 있다는데!
그리고 차희는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