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현대물, 동거, 친구>연인, 소유욕/독점욕/질투, 연하남, 나이차커플, 까칠남, 평범녀, 짝사랑녀, 단행본, 잔잔물
우연히 이웃으로 만난 강희와 무연.
혼자 사는 무연이 신경이 쓰였다. 동생 강준을 보는 것 같아 아무런 경계심 없이 편하게 다가갔던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거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 강희
분명히 선을 긋는데도 계속해서 호의를 베푸는 여자를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순수한 호의가 아닌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 무연
미리보기
‘서울 남자는 이럴 것이다.’라는 내 선입견에 딱 들어맞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셔츠가 젖은 채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고, 한쪽 어깨에 대충 걸쳐 멘 백팩도 흠뻑 젖어 있었다.
순간 망설였다. 마음은 벌써 달려가 우산을 씌워 주고 싶었다. 내 성격이 그랬다. 불의를 못 참고, 불쌍한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가 결국은 나중에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행동이 먼저 앞서곤 했다.
거리를 두고 비를 맞고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걸음을 빨리해 휙 지나쳐 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앞서가고 있는 그보다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비를 맞고 있는 그를 보며 뒤를 따라 걸어가는 마음도 편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의 뒤통수만 보고 걷고 있었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다. 뛰어가려나, 하고 바라봤지만 그의 걷는 속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와 달리 빗줄기가 굵어지는 만큼 내 불편한 마음은 더 커져 갔다.
에라, 모르겠다. 후회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낫겠지.
뛰어가 그의 옆에 섰다. 그리고 우산을 그의 키에 맞춰 높이 들어 올렸다. 뒤에서 볼 때보다 키가 더 컸다. 팔을 번쩍 뻗어서야 우산으로 그의 머리를 가릴 수 있었다. 갑자기 뛰어든 나를 보고 움찔 놀라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비 많이 와요. 같이 써요.”
올려다본 그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반가움보다는 예기치 못한 일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혼자 쓰세요.”
“저 몰라요? 906호? 앞집 살잖아요.”
“아, 네.”
“잠깐이면 되니까 같이 쓰고 가요.”
“이미 젖었어요. 그럼.”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까치발을 하고 들고 있는 우산 밖으로 한 발자국 비켜섰다. 그리고 무심히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순수한 호의를 거절당하고 나니 머쓱했다. 그는 저만큼 앞서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