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재수 없게, 갑자기 그 자식 생각은 왜 나는 거야!
똑 부러진 커리어우먼 연수는 근 10년 전에 악몽 같은 경험을 겪게 한 정현을 우연히 마주친다. 삭제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으로 늘 괴로웠던 연수는 공교롭게 그를 거래처 파트너로 또다시 만나게 된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주 부딪치게 된 둘. 그럴수록 서로에게 갖고 있던 ‘원망’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차츰 색을 달리 띠게 되는데…….
▶잠깐 맛보기
여전히 이정현이라는 인간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자신을 나무라며, 연수는 그만 내려가 자라는 말로 동생의 등을 떠밀었다.
“휴우!”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동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진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딴에는 자리를 피해 준 게 분명한 태경을 떠올리며 연수는 조금 전 잔에 따라 둔 와인을 단 번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인연이라는 것의 모양새가 좋은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인연은 인연이었다. 열아홉 살의 가을에 삶 속에 뛰어든 이름 석 자가 스물여덟이 된 지금까지도, 이렇듯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걸 보면.
‘생각을 말아야 해. 스쳐 가는 우연에 이렇게 힘들어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잖아. 우연일 뿐인데……. 지독한 우연이었고, 여전히 우연일 뿐인데.’
이정현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이면 늘상 맞대해야 하는 아쉬움을 털어 내며, 연수는 서둘러 테이블 위에 올려진 안주며 술병 따위를 챙기기 시작했다. 더는 이날의 끔찍한 우연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