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간중간 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었다. 분홍과 주황, 연한 파랑이 뒤섞인 하늘을 배경 삼아 그 위에 드리워진 잎사귀들의 섬세한 자수를 담아냈다. 고요한 연옥(煉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면 그녀가 있었다. 가슴이 죄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몰래 카메라를 돌려 선이 고운 어깨와 날씬한 등을 찍었다.
걷다가, 사진을 찍다가, 웃다가, 다시 걸었다.
하늘엔 꿀처럼 진한 노을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녀와 노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어깨, 속눈썹과 팔, 종아리에 노을이 노랗게 닿아 달게 절여지는 것 같았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쑥날쑥 모습을 바꾸는 여름. 그 계절에,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