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퀵서비스 기사는 험한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과 달리 뻣뻣한 태도에 준호는 화가 났다. 거 되게 뻣뻣하게 구네. “늦은 건 미안하지만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요?” “좀 늦을 수도 있다구요?” 상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준호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여자였어? 헬멧을 쓰고 있어서 곱상한 남자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여자였던 모양이다. “당신한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인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여기서 십 분 늦으면 다음 시간 맞추기 위해서 목숨 걸고 밟아야 한다구요. 그래도 내가 무례한 사람인가요?” 여자가 따져 묻자 준호는 할 말이 없어졌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여자는 일 분 일초도 더 낭비할 수 없다는 듯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그녀, 연서는 준호의 삶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날 이후 준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냉담한 목소리로 추궁하던 여자의 눈빛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넋을 놓고 여자의 맑고 투명하던 눈을 떠올리곤 했다. 그녀의 기억이 희미해져갈 무렵 그는 직장상사에게 억지로 끌려간 와인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연서와 다시 마주쳤다. 육감적인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정염에 불타는 수많은 사내들의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내고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그는 막무가내로 연서를 그곳에서 끌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