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록. 단지 밀약으로 시작되어 처음부터 끝을 예정하고 있던 사이였다. 헌데 건조하게 마른 눈동자에 자꾸만 담겨오던 그 아이의 미소를 차게 외면하면 할수록, 가슴속에는 따스하고 고운 달빛이 나비쳤다. 그 인연을 아프게 놓쳐버린 후에도……. 이제 다시 만난 너를 어찌 하면 좋을까.
희노. 마지막 남은 꽃잎을 남겨두고 떠나온 것은 가슴속에 원망이란 그림자로도 그가 남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감정이 고스란히 보이는 솔직한 눈동자로 늘 웃고 있던 계집아이 대신 어엿한 무사가 되었으니 더는 그때처럼 마음을 보여 상처를 입는 짓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구슬프게 떨어져 내렸던 인연의 꽃잎에는 마음을 담은 향기가 여직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