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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1권

    2017.06.30 약 13.5만자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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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열기와 낭만이 있는 그곳, 카사블랑카에
로맨틱한 오피스가 있다.



김지한

MH 더 비발디 호텔 이사.
동생의 실수와 부친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모로코 카사블랑카 지점으로 좌천된다.
6개월만 버티자는 인내심을 다지며 도착한 땅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쓰레기 같은 자식.’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지금?”


이라미

MH 더 비발디 호텔 카사블랑카 지사 직원.
짝사랑 상대가 내 절친과 연애를 시작했다.
충격과 공포에 덜컥 카사블랑카 지점으로 전근신청을 하는데
이 민폐커플이 남의 속도 모르고 따라온다.
아등바등 세월만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사놈, 아니 이사님.



“이상해. 기분이…….”




<본문 중에서>


라미는 돌아섰다. 낮 동안 후텁지근했던 공기가 밤이 되니 서늘한 그것으로 바뀌었다. 하루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오피스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카사블랑카에선 구하기 힘든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라미의 발길은 오피스텔 건물이 아닌 ‘MH 더 비발디 호텔’로 향했다. 한국에 있는 본사 호텔의 지사이며, 조금 전 혁주 커플과 함께 머물렀던 카페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그녀의 직장이자 카사블랑카에 여행을 오는 관광객들이나 출장을 오는 직장인들, 혹은 국가 간 업무를 위해 방문하는 외교관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현지의 호텔이었다.
로비에 들어선 그녀는 지나가는 밤 근무 담당 직원들과 눈인사를 했다. 꿀꿀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왜 일터로 다시 왔는지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었지만 이대로 오피스텔로 간다면 맥주를 마시기도 전에 엉엉 울기부터 할지도 몰랐다. 짝사랑은 이래서 고달프다. 늘 눈물을 매달고 살아야 하니.
로비를 중심으로 양 옆에 두 개씩 있는 엘리베이터들 중, 라미는 늘 이용하는 왼편의 2호기 앞에 섰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지만 거기까지 갈 힘이 발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때마침 안에 누군가가 탔는지 문이 스르르 닫히고 있는 중이었다. 서둘러 버튼을 누른 그녀는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닥으로부터 시선을 든 라미는, 엘리베이터 안을 쳐다보곤 미간을 구겼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김지한 이사였다. 그러니까 조금 전 민영이 말한 ‘새로 온 이사 놈’이자, 비서인 라미가 모시는 상사였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타이는 풀어헤쳐져 있었으며 양팔을 넓게 벌려 등 뒤의 바(bar)를 붙잡고 있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무척 피곤한 모습이자 표정이었다.
문이 천천히 열려 있는 그 몇 초의 짧은 시간 동안, 라미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이 오고갔다. 이사님의 오늘 저녁 일정이 뭐였더라. 아, 맞다. 카사블랑카 내 호텔 이사 연합 모임이 있었지. 술을 마셨을 수도 있겠다. 워낙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들어갈까 말까, 하는 갈등도 머릿속 한편에 자리했다. 존재부터 부담스러운 그와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은 역시 불편하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해도 말이다. 라미는 그가 눈을 뜨기 전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선 후 재빨리 닫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천천히 닫혀갔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쉰 것도 잠시, 문은 그녀의 눈앞에서 재차 스르르 열렸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자마자 라미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뒷머리를 기댔기 때문일까. 무척 날카롭고 예민하다고 느낀 평소와는 달리 지금의 그의 시선은 나른해보인다. 라미는 얼떨결에 꾸벅 인사를 했다.

“안 타요?”
“어……네.”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떻게 안 거지?
라미는 주저 어린 발길을 겨우 안에 들였다. 그의 옆에 나란히 서자 두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문 자체가 하나의 거울이라 영락없이 그의 시야 안에 갇힌 셈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이 무척 선명한 상태로 맞은편 거울에 훤히 비치고 있었다.
라미는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동공을 이리저리 굴렸다. 얼핏 본 거울 속에선 꼼짝없이 그의 눈빛과 닿아 있었다. 왜 저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야, 부담되게.

“상사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일부러 피하는 거 촌스러워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위잉, 소리를 내며 느린 상승을 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음성은 무척 굵고 깊게 울렸다. 라미는 생긋 웃어보였다. 몇 년 동안 비서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잘 훈련된 웃음 정도는 지을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이사님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모임은 잘 끝나셨는지…….”
“지금은 오피스텔에 있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피한 채 다른 걸 물어오는 그를, 라미는 잠시 빤히 쳐다보다 다급히 변명했다.

“어, 그게……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생각나서요.”
“쓰레기 같은 자식.”

응? 라미는 앞뒤 없이 튀어나온 그의 한마디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지금?”

거울 속에서, 그가 비싯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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