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여인 가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트려야 했던 결.
- 황자마마와 같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그날부터였습니다. 언젠가는 황자마마의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오랫동안 간직해 온 그 꿈을, 오늘에서야 이룬 것 같습니다.
<본문 중에서>
“내쳐 줄까?”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믿을 수 없어 멈춰 선 그대로 한참을 서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이 소첩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셨습니까?”
되돌아온 질문에 답을 돌리지 못한 그가, 천천히 손을 뻗어 퉁퉁 부어 버린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으로 전해지는 열감으로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만 할 뿐, 일을 막아내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한참 동안 그녀와 눈을 맞춘 채 부드러운 손길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그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내쳐 주는 것 밖에는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처음부터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불행뿐이었다.”
“전하.”
그녀의 다정한 말투와 따듯한 눈빛에, 눈을 감았다가 뜬 그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금 전, 앞에 있었던 사람은 가짜라는 듯 어느새 그의 표정과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해 있었지만, 마음으로 진심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애써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있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녀가, 용기를 내 물러선 만큼 가까이 다가섰다.
“이곳에서 처음 전하를 만나게 됐을 때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전하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어렸을 때 아바마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거든요.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할 수 없다고 그러니 어떻게 변했던, 그 본성은 끝까지 믿어 주라고요.”
“아니, 너무나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
“전하를 뵙고 저 역시 그리 생각했습니다. 아바마마의 말씀이 틀린 것이라고 사람의 본성이 쉽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마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된 일이지 않느냐.”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때 그 아이를 바라보던 그 눈빛 말입니다.”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시선을 피하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져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전하의 마음을 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 눈빛이요.”
다정한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있던 그가 얼굴에 닿은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본성은 변할 수 없다는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오늘 절 바라봐 주시던 그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는 거겠지.”
“왜 스스로를 망가트리며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앞으로는 전하를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