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이수. 두 아버지에 연약한 몸을 가진 그녀. 원하던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던 삶. 아빠도 발레도 연인도 가질 수 없었던 그녀의 인생에 예상치 못했던 단천이 들어왔다.
[“좋아해요. 그렇지만 사귀지는 않아요.”]
금단천. 부모에게서 부모로부터 받아 마땅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한 그. 부모에게 거부당한 지독하게 아프고 차가웠던 그의 죽은 인생에 안개꽃 같은 수가 들어왔다.
[“너 말고 다 싫어.”]
부족한 두 사람의 인생이 만나 그들과 주변을 밝히는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단천이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서 놀랐다. 금방 떨어져 나갔는데 그게 단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단순하게. 놀라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단천이 손가락으로 닦아서 먹은 거지. 그래. 단순하게. 잘 접힌 티슈도 있지만 손이 빨랐던 거지. 그리고 아까워서 티슈에 닦지 않고 입에 넣고 먹은 거야.
두근.
얼굴에 열이 나려고 하는 것 같아 당황했다. 치즈크림에 카페인이 들었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열도 나고.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 먹어 봐.”
뭘? 입술에 묻은 크림? 아니지. 아니야. 정신 차려.
“남자들은 이런 빵 잘 안 먹나 봐요.”
진정하자. 단천은 단순해서 그래. 뭐든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자꾸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진정해.
“맛있어.”
맛있어서 그랬던 거야. 맞아. 역시 그랬던 거야.
“좋아하지만 자주 먹지는 못해요.”
말하는 중에 열기와 두근거림이 겨우 사라졌다. 빵이 남았는데 식욕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 같다. 어쩌지?
“이것도 나눠 먹자.”
단천이 머뭇거리는 그녀를 위한 것인지 남은 빵 하나를 집어 반으로 나누었다. 조금 더 큰 부분을 그가 먹고 작은 부분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안에 뭐가 든 것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사라졌던 식욕이 다시 돌아와 남은 빵을 나눠서 맛있게 먹었다.
“와, 배불러. 집에 가서 밥은 먹지 못하겠어요.”
빵집을 나오며 배를 두드렸다. 단천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어둑함 때문에 잠시 멈춘 단천의 얼굴에 그늘이 져서 표정을 살피기 어려웠다. 거리는 어두워져 있었다. 어두워진 길을 단천과 또 말없이 걸어 올라갔다. 단천의 빌라엔 금방 도착했다. 아마도 그가 가방을 들어주어서 금방 도착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아쉬움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라 단천이 멈추기도 전에 가방에 손을 뻗었다.
“기다려.”
수의 손을 보고 몸을 돌린 후에 바로 가방을 내려 그녀의 어깨에 메어주었다. 갑자기 얻은 무게에 몸이 살짝 비틀거렸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가방을 받을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아,
돌아서 가버리는 단천. 그러나 평소처럼 그냥 돌아서가지 않아 놀랐다. 커다란 그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한 것도 아니다. 몸을 돌리며 찰나처럼 스쳐지나간 손. 그런데 왜 이렇게 진한 여운이 남는 걸까? 가슴이 또 두근거렸다. 겨우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손길에 뭘 그리 많이 느끼는 건지. 스스로에게 유난하다고 면박을 주었지만 두근거림은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자꾸 두근거리지? 괜히 심장한테 이상하다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단천은 거실에 서서 수의 아파트를 보고 있었다. 돌아와서 오늘 수와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것들을 모아 몇 가지를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제 질문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극복되었다. 수와 함께 하며 질문하고 얻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가가는 기분. 용기가 점점 더 생기고 있었다.
“카페인과 당분. 그리고 피로감. 그런 걸로만 보면 심장 쪽이 아닐까 해요. 확신하면 안 되니까 참고만 해요.”
아주머니의 대답으로 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퇴근하고 남은 집. 이제는 텅 빈 공간에 대한 공허함은 자주 느끼지 않았다. 바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난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 수와 함께 하기 위해 조사를 했다. 처음 가보는 학교 도서관. 수술과 치료를 위해 해외에 잠시 있는 동안 뒤쳐진 공부를 위해 그곳 도서관에 간 적은 많았다. 그곳과 같은지 알기 위해 운동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에 가서 둘러보았다. 결국 오늘 하루 무사히 수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크림.
달콤함이란 그런 걸까? 몸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수의 입술. 손가락에 남은 입술의 감촉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