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태열아, 네가 남자친구였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는 아직도 네가 좋아. 그런데 있잖아, 짝사랑이라는 게 정말 힘들더라. 넌 모르지? 혼자 하는 사랑이 깊어지면 마음이 얼마나 건조해지는지."
-"얼굴 좀 들고 말해. 무슨 죄졌어? 친구하자. 대학가서도 연락하고 그렇게 지낼 수는 없냐? 사귀는 거...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거... 참 네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네. ...나는 태열이 네가 마냥 좋았어. 너한테 이리 채이고 저리채여도 말 한번 걸어 주는 거에 감지덕지했었거든. 이젠 네 뒷모습보면서 마중해주고, 아침마다 샌드위치도 못 사주고, 사심 듬뿍 담긴 눈빛도 못 보내지만."
눈물이 흐르고 있어서 도저히 고개는 들 수 없었다. 빨리 말을 맺어야하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빨리 이 감정을 끝내고 싶었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태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마음이 너무 공허하고 쓸쓸했다.
"항상 가까이 있고,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고. 네 말대로 매일 어깨를 부딪치는 너를, 나 혼자서 좋아한다는 건 너무 외로운 것 같아. 네 손동작하나에도 전전긍긍하면서 애태우는 거 이제 안 해. 못해. 그래서 나도 이제 그만 할 거야. 완전 게임오버, 내가졌어."
가눌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리고 서러움과 서글픔이 온몸을 장악해버렸다. 또다시 몸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구멍이 따끔거리기까지 했다. 열아홉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무거움이었다. 자꾸만 가슴에 불길이 들끓어 나도 모르게 짧은 숨결을 토해냈다.
-"진정해. 네 멋대로 뛰어넘고 확대해석하지 마. 못생긴 게 우니까 더 별로잖아. 그리고 멍청아, 이런 걸로 울지 마! 나 그럴만한 새끼 아니니까. 나쁜 새끼라고 욕해도 나는 너랑 친구로 남고 싶어."
못됐구나, 그런 생각을 있는 대로 얼굴에 들어냈더니 태열이 진심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창회도 나왔으면 좋겠어. 몸을 돌리는 나를 보며 태열이 급히 말을 이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 한 듯 했다. 친구라니……. 그런 염치없는 생각이 어디 있어? 나쁜 자식. 끝나는 순간까지도 차마 할 수 없던 말이 또다시 입속에서 맴돌았다. 내 마음이 종이였다면 지금쯤 분명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거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태열이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오면 알게 될 거야. 짝사랑이 뭔지, 네가 지금 얼마나 고약한 말을 하고 있는지! 그럼, 난 갈게. 오늘은 내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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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으로 끝이 난 첫사랑이 몇 년 만에 나타나 결혼할 여자를 구해달라고 한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채 헤어져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두 사람이 재회를 했다. 몇 년 사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태열, 그런 그가 혼자만 품고 있었던 비밀 하나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