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흩날리는 은륜화의 붉은 꽃잎 속에 선 이령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한데 너무 고와서 조금은…… 슬플 지경이에요.” 내뱉은 말과 달리 이령은 가호를 향해 다시금 활짝 웃어 보였다. 앞만을 향하던 날카로운 은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가호의 미간이 드러나지 않게 구겨졌다. 파랗게 맑은 하늘, 희고 보드라운 구름떼, 빗방울처럼 날리는 붉은 꽃잎 그리고 그 속에 선 작은 계집아이. 점점이 아롱지는 빛에 무언가 움직였다. 오랜 시간 어두컴컴하기만 하던 내부의 공간이 짧게 요동쳤다. 가호의 시선이 느릿하게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무감하게, 그저 끝없는 공허만을 담은 것처럼 그렇게. 곧이어 그는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걸었으나 균열은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깊숙하게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