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그러나 사나이.... 그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비둘기의 깃 털을 쓰다듬고 있다.
각이 진 검은 흑사암 위에 걸터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 았다. 대략 20여 세나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린 듯도 하였다.
하지만 오 관이 지나치게 뚜렷한 탓인지 사나이의 음울하고
냉막 해 보이는 얼굴에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보인다.
이로 인해 사실 그는 실제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 다.
더구나 그는 지금 몹시 지친 듯 온 몸에 피곤의 기색이
역력하여 약관의 청년다운 활력이라곤 찾아볼 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眼)! 눈만이 살아 펄떡이고 있었다.
실로 기이한 조화였다.
섬세한 선을 지녔으되 퇴폐적 인 분위기의 얼굴.
이런 얼굴을 일컬어 세인들은 몹시 영준하며 매력적이라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정신은 그가 가 진 천부의 준미함과는
극히 괴리감을 갖게 하는 것으 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스산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나이는 천천히 비둘기의 발목에 묶여져 있는 전서를 풀더니 꺼내 펼쳤다.
정황으로 미루어 실로 당연하고 단순한 동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를 위시한 9인의 인물들은
마치 사 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꿈틀 변화를 보인다.
먼저 사나이의 안색이 엄숙해지는가 싶더니,
제각기 흑사암 주위에 걸터 앉거나 혹은 드러누워 있거나
혹 은 서 있던 여덟 명의 사나이들이 모두 자세를 고쳐 잡은 것이다.
다만 내내 변함없는 것은 그들의 눈이 사나이에게서 조금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사나이가 공손히 받쳐 들어 읽고 있는 한 장의 전서에 그들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을!
[금군대도독(禁軍大都督)] 위경삼을 척살하라. 기간은 보름.
자료는 추후 전달하겠다.
- 대주(隊主) 전서를 읽고 있는 사나이의 눈이 삽시간에 암담하게 변한다.
그토록 맹렬히 타오르던 눈빛이 순식간에 어 둠 속으로 빨려들 듯 꺼져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손마저 굳어진 듯 티끌의 무게나 다름 없는
한 장의 전서조차 버거운 양 힘없이 손을 내린다.
늘어뜨 려진 그의 주먹 안에서 전서는 무참히 구겨지고 있었 다.
사나이는 시선을 돌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본 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되 그에게는 먹장구름이 뒤덮 인 암천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야를 덮은 암천을 향해 내심 통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