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타인과 살갗이 닿으면 상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여성, 해린은 투병 중 귀농하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인 허름한 농가주택을 처분하기 위해, 단몽리로 향한다. 회색빛 콘크리트가 빚어낸 도심 풍경, 삭막한 일상에 익숙한 그녀는 행여라도 이동 중 타인과 닿을까 두려워 흰 장갑을 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평생 올 일 없을 꽉 막힌 시골, 단몽리. 낯선 초록에 닿은 그녀가 마주한 것은 아버지의 고여 있는 설움이나 비참한 마지막이 아닌 삶에 대한 간절함, 내일을 향한 기대의 싹이었다.
가슴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해린을 살갑게 반겼다. 흡사 금빛 윤슬이 가득한 바다를 연상케 하는, 황금색의 벼 이삭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며, 해린은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작은 시골집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홀로 귀촌한 그녀 앞에 나타난 수려한 외모의 남성, 해인. 자신을 단몽리의 이장이라 소개한 그는 묵묵히 해린의 적응을 돕게 되는데, 왜일까, 해린은 눈을 서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정하고 상냥한 그로부터 들려오는 마음의 형태, 감정의 색을 읽어 보면 온통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의 애틋한 내용뿐. 그녀는 어렴풋이 느낀다. 해인과 함께하는 자신의 일상이, 그렇게 스스로의 영혼의 색이 점차 푸르게 물들어 곱게 익어 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