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어린 시절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여인, 은설화.
몸이 약한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들을 위해 막대한 지참금을 준다는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
병약한 서방님이 정양 중인 곳으로 찾아간 설화는 스스로를 귀신이라 칭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사내를 만난다.
설화는 정황상 그 사내가 자신의 서방이라 철석같이 믿어 버리고 만다.
설화의 진짜 서방은 대를 잇지 못하고 돌연사하였고, 설화의 시모가 대를 잇기 위해 설화를 속이고 대숲에 살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같은 사내에게서 후사를 보고자 꾸민 계략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러나 그 마음은 연모가 되고, 귀 역시 순수한 설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진정한 부부가 되었으나 모진 운명은 설화에게서 귀를 빼앗아 간다.
홀로 배 속의 아이를 지키며 근근이 살아가던 설화 앞엔 잔인한 재회만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 형님의 아이를 가졌느냐.”
서늘한 눈길은 사방에서 치솟는 불길을 잠재울 듯했다.
가늘게 뜬 검측한 눈동자와 돌올하게 솟은 콧날, 심원한 음성의 주인인 사내는 존재만으로도 거석처럼 설화를 짓눌렀다.
“혀, 형님이라니요.”
설화가 부푼 배를 감쌌다. 완만하게 부푼 배 속에 품은 아이를 노려보듯 사내의 눈빛이 한층 맹렬하게 빛났다.
설화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저를 무심하게 보는 사내의 눈빛이 제 심장을 짓밟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이토록 닮았단 말인가. 잔인할 정도로…
저도 모르게 그리움에 찬 흐느낌이 새어 나올세라 설화는 입술을 사리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