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갓난아기 시절부터 봐온, 여동생보다 더 여동생 같은 가을.
그런 가을이 그에게 ‘여자’, 그것도 사랑스러운 여자로 가슴에 새겨진 건 순간이었다.
그 뒤로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백조차 하지 못한 채 그녀의 곁을 맴돌기만 했다.
그녀에게 자신은 그저 ‘오빠’일 수밖에 없었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진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그렇게 그녀는 더 이상 동생이 아닌 여자가 되어 그의 곁에 서게 되었다.
그것도 그동안 자신이 알아 왔던 ‘아는 여자’가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의 여자로.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던 든든한 ‘오빠’가
자신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사랑해 왔다고 고백한 순간,
가을의 세상은 뒤집어졌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그와의 키스에 가슴 떨릴 정도의 설렘을 느끼고
흥분과 떨림 속에서 그와 하나가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녀가 알아 왔던 오빠가 아닌 전혀 새로운 남자가 되었다.
그녀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서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그가 알아 왔던 ‘아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자,
그는 더 이상 그녀가 알아 왔던 ‘아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아는 남자, 아는 여자’라 더욱 좋았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아는 남자, 아는 여자’여서,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본문 내용 중에서]
“얼마나 만났어?”
“두 달.”
“감쪽같네.”
“내가 예전의 그 가을인 줄 알았지? 두 번은 망신 안 당할 거야.”
“인마, 고삐리 다음에도 네 과거 엄청났어.”
“내가 언제?”
“차인 것만 몇 번이야?”
“꼭 남의 아픈 얘기를 거들먹거리더라? 사랑을 하니까 차이는 거지. 오빠처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게다가 읽다 만 책은 또 몇 권이야?”
가을이 그만하라는 듯 그에게 눈을 흘겼다.
“사람이 아닌 것 같으면 접어야지, 계속 가니? 이러니까 내가 이젠 신비주의를 고수하겠다는 거야.”
“이미 다 불었어. 소개팅으로 만난 지 두 달 된 남자. 같은 빌딩에 근무한다며?”
손등으로 차창을 톡톡 두드리며 가을은 똑똑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하긴 감출 것도 없지 뭐, 이미 물 건너간 일인데. 에잇, 강우진 약이나 올려야겠다.’
두 달 전쯤 소개팅을 한 건 사실이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 남자가 알고 보니 같은 빌딩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 남자가 볼수록 마음에 안 들어서 슬슬 접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참이다.
“오빠, 남자는 썸 탈 때도 스킨십 생각하지?”
“뭐?”
“좋아하는 여자를 보면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그런 거지?”
“너, 너 대체 어떤 놈을 만나고 다니는 거야?”
우진은 눈앞이 캄캄했다.
“스무 살하고 스물아홉 살의 사랑은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속전속결? 아니야?”
우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엄한 눈으로 쳐다봤다.
“허튼짓 하지 마.”
“왜 성질을 내?”
“속전속결 좋아하시네. 그러다가 인생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 옆엔 잘 사는 사람들만 많더라, 뭐. 암튼 난 이번에 잘되면 결혼도 할 생각이야.”
“뭐, 결혼? 고작 썸 타는 남자하고 결혼을 생각해?”
가을이 피식 피식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오빠, 오빠니까 하는 말인데 여자도 욕구 같은 게 있나 봐.”
“뭐?”
“어릴 땐 몰랐는데 가끔 되게 외로울 때가 있어. 감정적으로 외로운 게 아니라 이게 뭔가…… 그러니까 피지컬적으로 외로운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흠흠…….”
“어얼! 강우진답지 않게 뭘 민망해하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