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지섭은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한영물산 임회장의 셋째 딸인 순영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사생아인 순영은 친엄마와 일찍 사별하고 새어머니와 배다른 두 언니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순영은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미국에서 석사까지 하고 온 잘난 남자가 자신과 결혼을 해준 것만으로도 그저 황송해서 지섭이 매일 야근을 하고 밤늦게 들어와도, 결혼한 지 열 달이 지나도록 각방을 써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저 이 집에서 쫓겨나 그 지옥 같던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 순영에게 시어머니 오여사는 이 집안 식구가 되고 싶으면 어서 아이를 가지라고 재촉한다. 그때부터 순영은 자신을 소 닭 보듯 하는 지섭을 어떻게 하면 제 방으로 끌어들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섭이 이층 서재로 올라가기 위해 막 계단 쪽으로 돌아섰을 때였다.
“안돼요!”
갑자기 달려온 순영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섭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는 순영을 내려다봤다.
“뭐하는 거야?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말을 해야 알아듣지.”
“오.. 올라가시면 안돼요. 오늘부터는 저랑 같이 침실에서 주무셔야 해요.”
너무 기가 막혀 그저 웃음만 나왔다.
“너 남자랑 여자가 한 방에서 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이러는 거야?”
지섭의 질문에 순영이 눈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너무 겁 없이 들이댄다 했더니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들이댄 거였군.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네가 나한테 이러는 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 줄 알아?”
순영의 얼굴에 다시 고집스러움이 어렸다.
“무슨 말을 하셔도 소용없어요. 지섭 씨는 오늘부터 꼭 저랑 주무셔야 해요.”
지섭의 입술 사이로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순한 앤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진짜 황소고집이네.
“네가 옆에 있으면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런 걸 고문이라고 하는 거야.”
“왜 못 주무시는데요? 제가 지섭 씨를 못 자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왜 못 자는지 궁금해? 알려줘?”
지섭의 목소리에 은근한 기색이 감도는 것도 모르고 순영은 큰소리를 쳤다.
“알려줘 보세요. 어디 들어나 보게요.”
“좋아. 네가 알려달라고 했다?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다?”
“후회는 무슨 후회요. 괜히 이층에 가서 자고 싶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순영은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숨을 훅 들이쉬었다. 지섭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는 감촉이 너무 낯설어서 그녀는 꽤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뭐... 하세요?”
순영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지섭이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가 알려달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