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본 작품은 특정 캐릭터의 트라우마를 다룬 에피소드에 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프롤로그는 1인칭, 이후 본편은 3인칭으로 진행됩니다. 구매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절반가량을 병원에서 보내고 오랜 투병 끝에 20살 겨울 생을 마감한 김현서.
죽는 순간까지 가능하다면 가늘고 길게,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바람이 강해서였을까? 눈 떠 보니 인기 로맨스 판타지 소설 <숲의 마법사> 속 엑스트라 마을 사람 A 정도로 추정되는 인물에 빙의해 버렸다.
그럼 엑스트라답게 마을 사람 B, C, D들과 가늘고 긴 평범한 삶을 살면 될 텐데, 어째서인지 <숲의 마법사>의 서브 남주 바이스 카르젠에게 주워지고, 그에게 극진한 보호를 받게 되는데……
[카르젠 님은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잘해 주세요?]
그의 과한 친절은 귀족으로서 순수하게 베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
소원을 떠올린 순간 바로 또 유성이 떨어졌다.
이비는 재빨리 소원을 빌었다.
‘이 세계에서 무사히 취직하게 해 주세요.’
소원을 빌자마자 또 다른 유성이 떨어졌다.
‘카르젠에게 은혜 갚게 적당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이번엔 두 개의 유성이 동시에 떨어졌지만, 어쩐지 이비는 소원을 빌 수 없었다. 빌고 싶은 소원은 있는데,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비는 슬쩍 고개를 돌려 카르젠을 올려다봤다. 언제부터인지 그도 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카르젠이 살짝 고개 숙이며 눈을 맞춘 순간, 이비는 제 소원을 정의했다.
‘내가 여기에 더 머물 이유가 없어서 카르젠의 저택을 떠난 후에도 가능하다면… 흐억!’
“이비!”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질 뻔한 이비의 허리를 그가 잽싸게 받쳤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뒤로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카르젠을 올려다보게 된 이비의 눈이 커졌다.
아름다운 카르젠의 뒤로 무수히 많은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놀라 그대로 굳어 있으니 바람에 흘러내린 그의 머리카락이 이비의 뺨을 간질였다.
“이비, 괜찮아?”
걱정스런 물음에 멍하니 카르젠을 바라보던 이비가 겨우 정신 차리고 끄덕였다. 부축받아 카르젠과 마주 서게 된 이비는 그를 올려다보며 홀린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이비의 손길에 카르젠은 놀란 기색 없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미소 지었다. 어깨너머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 이비는 쏟아지는 유성우보다 카르젠의 눈을 마주 보며 소원을 마저 빌었다.
‘…가능하다면 카르젠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