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본 작품은 고구려 제24대 양원왕 실록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인물의 이름과 사건은 위키백과 ‘양원왕’ 검색 결과를 참고하였으나, 작품의 내용은 허구이며 실제 역사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모 커뮤니티에 올렸던 작품(당시 작품명 [녹군전])을 리네이밍한 작품입니다.
옆에선 언제나와 같은 고른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단함 때문인지 백우는 색색 소리를 내며 금세 잠든 모양이었다. 고개 돌린 황제의 눈에 백우의 옆얼굴이 들어왔다. 가지런한 속눈썹과 부드러운 뺨, 빨간 입술이 황제의 눈 속으로 커다랗게 박혀 들어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황제는 질끈 눈을 감았다. 손 내밀면 닿을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백우가 있었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닿을 수 없었다. 누군가 억지로 가슴속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황제의 얼굴이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졌다.
‘이래서는 내 너를 곁에 둘 수 없는데….’
순식간에 맺힌 눈물이 눈꺼풀 사이에서 스며 나왔다. 숨 쉴 때마다 눈물이 맺히고 또 흘러내렸다. 황제는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죽여야 했다. 가득 고여 버린 마음이 자꾸만 입 밖으로 울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직 모른다. 아니 알아서는 안 된다.’
다시 눈을 뜬 황제가 눈 속에 백우를 담았다. 그리고 잠든 백우의 옆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넘쳐 버린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내 고양이가 되지 않으련?
#태자의 고약한 장난이 끝나길 바랐지만
#서로의 유일한 위로와 온기가 되고
#날 좀… 안아 줘.
#황제의 몸을 받는 건 나여야 했다. 황후가 아니라.
[미리보기]
황제가 백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내려 백우를 바닥에서 자게 했고 욕실엔 혼자 갔다. 식사가 들어오면 밥과 반찬을 한데 모아 한 그릇에 얹어 주고는 바닥에서 먹게끔 했다. 백우만 침소에 남겨 두고 황제 혼자 밖으로 나다니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황제가 침소를 비우면 백우는 창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황제를 기다리기도 했고, 이제는 마음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침대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왜 나를 멀리하시는 걸까?’
백우가 침대 위에서 무릎을 모아 몸을 둥글게 말았다.
‘황제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 걸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무릎 위에 턱을 올렸다.
‘왜 나와 함께하시던 것들을 하지 않으실까? 왜 어디든 데리고 다니시던 것을 그만두셨을까? 왜 이제 따뜻한 침대에서 자지 못하게 하실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황제를 위로하고 싶어서 한 행동들도 작년엔 문제 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황제께서 기뻐하신 줄로 알았는데.’
함께 잠들었던 마지막 밤을 생각하다 백우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날 밤의 꿈이 생각났다.
‘설마…. 황제께서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시지 않고서야 그런 망측한 꿈을 꾸었다는 걸 아실 리 없어.’
백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셨다면 나를 이렇게 가만두지 않으셨을 거야. 아실 리 없어. 그래야만 해.’
백우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찼다.
‘…그렇지만 이젠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으시는걸. 이러다가 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난 어떡해야 하지? 하나뿐인 혈육인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다른 친척들의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 갈 곳이 없는데. 아니, 갈 곳이 있다고 한들….’
백우는 황제가 눕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누운 황제의 가지런한 속눈썹은 오직 저만 바라볼 수 있었다. 맑은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고운 물방울들도 오직 저만이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다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때리고 밀치던 시절에도 곁에 붙들어 두고 보내지 않던 황제였다. 백우를 곁에서 물리고 종일 떨어뜨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