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음울하지만 평온했던 일상, 여운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계단을 따라 내려가 옆문을 통해 뒤쪽으로 나가면 구교사 한구석에는
누구도 발걸음하지 않은, 자신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짧은 스포츠머리와 유도복을 입은 채 잠들어 있던 두 살 어린 후배, 신강후.
꼬깔콘과 쌍쌍바를 나눠 먹으며, 서로에게 오로지 마음을 열었던 두 사람은
십여 년이 흐르고 회사 선후배로 재회하게 되는데…….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입사하게 된 신입사원, 신강후입니다.”
여훈희의 기억 속 그 어느 부분보다도 강건한 성인 남성이 된 신강후는
그에게 지난날의 싱그럽고도 풋풋한 풀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운희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냉기가 흐를 정도로 낮은 온도였다.
*
“선배님이라고 왜……, 안 불러?”
그 말에 단단한 몸이 더욱 우뚝, 하고 굳었다.
“……고 싶었는데.”
“……?”
느닷없이 튀는 화제에 강후가 한쪽 눈썹을 위로 추켜올렸다.
운희는 물기 어린 눈을 깔고 양손을 결박당한 채 말을 이었다.
“너.”
“…….”
“강후, 너. 보고 싶었는데. ……경기하는 거 끝까지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고 싶었어.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흐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