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障)과 젊은 시절 결의형제(結義兄弟)를 맺었던
대명제국(大明帝國)의 건국일등공신(建國一等功臣)인 호국대장군(護國大將軍)
제갈휘(諸葛揮)는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인 황제(皇帝)의
오른팔로서 전장(戰場)을 용맹하게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건국 후 분주하게 활동을 하다 황제가 친필휘호(親筆徽號)를 내려 준
남경(南京)에서 제일 큰 의천장(義天莊)에서 이제는 조금은 편히 쉬고 있었다.
의천장(義天莊)은 남경 외곽에 있으며, 사람들은 이곳을 장군부(將軍府)라
부르나 겸손한 제갈휘는 굳이 의천장이라 불러 주기를 원한다.
제갈휘는 거의 매일 황제(皇帝)와 나라의 기틀을 잡는 일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었다. 제갈휘(諸葛揮)는 전장(戰場)에
나가 있는 동안 사랑하던 아내 설부용(雪芙蓉)을 잃었다.
그가 주원장을 도와 동분서주(東奔西走)할 때 우연히 곤륜산(崑崙山)의 어느
계곡(溪谷)을 지나다 독사(毒蛇)에 물려 신음(呻吟)하는 것을 구해 주고
정이 들어 늦은 나이에 얻은 부인이었다.
선화대부인(仙花大婦人) 설부용(雪芙蓉)은 무림(武林)의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사문(師門)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곤륜일미(崑崙一美)로 불리울
정도로 미모가 빼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좀 차이지기는 하나
제갈휘(諸葛揮)의 남자다우면서도 부드러운 데 반해 그와 혼례를 치뤄
꿈 같은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편은 전장(戰場)으로 떠났다. 남편이 떠난 후 아들 제갈천(諸葛天)을 낳았고,
유모(乳母)조차 두지 않고 검소(儉素)하게 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휘(諸葛揮)는 아내의 곁에 있지 못하고 늘 전장(戰場)에
있었기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전장(戰場)에서 혁혁(赫赫)한 전공(戰功)을 올리고 돌아오기 얼마 전에
그만 지병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전장(戰場)에서 아내의 사망(死亡) 소식을 들은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의 애병인 청룡금검(靑龍金劍)을 휘두르며
원(元)의 잔당들을 소탕하였다. 북경(北京)으로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잘못해 준 것이 마음에 걸려 아들 제갈천(諸葛天)에게 더욱 깊은 정을 쏟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낙(樂)은 그가 늦게 본 독자(獨子) 제갈천(諸葛天)이
티없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충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아들의
교육문제(敎育問題)이었다.
제갈천(諸葛天)은 사 세 때 모친(母親)을 잃고 당년(當年) 십이 세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의천장(義天莊)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 보지 못한 채
의천장(義天莊) 내에서 살아왔다.